[신학묵상]망해야 정의다.
살아가기 위해서 직업을 갖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소원한다. 내 직업이 더 잘되고 영원하기를, 그리고 돈 많이 벌고 싶어한다. 그게 성공이다. 자기 직업이 잘될수록 성공인 것이다. 좋은 학교를 가려는 이유도, 좋은 직장을 가지려는 것도, 연봉이 높아지려는 것도, 몸값이 비싸게 되려는 것도 모두 성공하기 위해서이다. 인생의 수많은 과정들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야기한다. 망해야 한다고 말한다. 믿음의 언어로는 내려놓음, 자기부인이라 하고 경제용어로는 망하는 것이다. 그걸 의롭다하고 정의라고 한다.
영어선생을 생각해보자.
영어를 나름 열심히 했고 투자했다. 그래서 토익 토플점수도 괜찮고 생활영어도 곧 잘한다. 이제 본전을 뽑아야겠지. 한국의 교육열이 뜨거울수록 영어의 필요가 높아질수록 영어과외 학원 그리고 자신의 토익점수의 활용도는 높아질 것이다. 곧 자신의 연봉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생하는 고교생들 재수생들을 보면 달라진다. 거국적인 면에서 이러한 엉뚱한 과열된 영어교육은 교육제도의 붕괴를 뜻하고 눈먼 돈과 시스템의 낭비이다. 영어를 지금처럼 공부해서 과연 어디다 써먹을까? 평생에 몇번이나 영어를 사용할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공부하는 방법도 문제다. 책상에 앉아서는 영어를 배울 수 없다. 문법이 틀리고 이상해도 그냥 말하고 무족건 말하고 외쳐야 영어가 되는거다. 또 영어를 써먹을 사람은 실재 많지 않다. 온국민 모두가 외국 말을 그렇게 열심히 해야할 이유가 없다. 직접 해당되는 사람들만 직접 외국에 가서 배우고 익히면 되는거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온국민이 영어를 사투리처럼 쓰게 하려고 한다. 그래야 성공처럼 말하고 그 레벨은 토익점수가 증명한다. 이런 교육은 교육제도의 실패와 사회인프라와 시스템의 낭비이다. 또한 사회교육의 빈곤과 철학의 빈곤이다. 예절과 존중을 모른체 얄팍한 지식을 전부인양 강조하고 자랑하고 반대로 모르는 사람은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학벌사회 학위사회를 만든다.
양심적인 영어선생에겐 이런 사회현상은 고통일 것이다. 삐뚤어진 교육제도의 혜택을 보고 그 위에 직업과 성공을 추구하게 되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사회의 비효율성과 중고생등의 고통과 시스템의 낭비위에서 이익을 보아야하는가를 묻게 된다. 과연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해서 살것인가? 아니면 이 구조를 바꿔야하는가? 그럼 나의 직업은 어떻게 해야하나?
하나 더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
의사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지를 묻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웬만한 집의 부모들 모두 자식들이 존경받고 성공하길 바라고 의사는 이런 경우의 대표이다. 의사되기 위한 노력은 단지 의대를 거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우수한 고교내신과 입학성적이 필요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이러한 십여년의 기간을 거쳐서 의사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선택받은 의사는 그때부터 고생한만큼 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더 많은 연봉과 존경받아 마땅한 사회적 지위를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의사가 잘될수록 좋을까? 아니다. 좋은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많은 의사가 나오고 병원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게 아니다. 그만큼 아픈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병때문에 살아가는 직업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불행때문에 산다는거다. 의사는 그걸 알아야 한다. 자기 직업은 망해야 좋다는 것을. 자신이 잘될수록 안 좋은거다. 그렇다고 의사를 때려치자. 혹은 의사가 없게 하자? 그건 아니다. 의사는 더욱 절실하다. 그만큼 아픈 사람이 많고 더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현실이다. 다만 알아야한다. 의사가 치열한 경쟁을 치루고 이룬 자기의 업적 사회상류층에 속할 기회를 얻은게 아니라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먹고 살아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우리는 자기 직업이 잘되길 바란다. 그래서 돈을 더벌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또 더 많이 벌고…
하지만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다른 이들의 아픔위에자신의성공이 세워지는지를 잊곤한다. 우리의 성공과 압도적 연봉은 다른 사람의 불행위에서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좋은 의사는 모두가 건강해서 자기의 직업이 망하기를 바랄때 좋은 의사이다.
좋은 교사는 국영수 과외가 필요없고 국영수 중심교사가 필요없어서 아이들이 학교를 즐길수 있게 바꾸는 교사가 좋은 교사이다.
음악을 누구나 배우고 일반화되어서 자신이 점점 헐값이 되길 꿈꾸는 음악가가 좋은 음악가이다.
좋은 군인은 평화를 만들어서 군인이 실직되는 꿈을 꾸는게 좋은 군인이다.
좋은 정치가는 이해다툼이 없고 지도력이 필요없어서 정치가가 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좋은 정치인이다.
좋은 목사란 죄인들이 없고 영혼이 병든 이들이 없어서 자신이 망하는 것을 꿈꾸는 목사가 좋은 목사다
보통 사람은 자기 직업에 그냥 충실하다. 한 평생 살면서 직업에 성공하고 돈 남보다 더 잘 벌고 번듯한 집살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말한다. 자기 직업직장이 잘 되길 바라는게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로운 사람, 위대한 사람은 자기 직업이 필요없도록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의사가 망하고 정치가가 적어지고 군인이 실직하고 목사가 없어도 되는 사회를 꿈꾸면 좋겠다. 예수님도 십자가까지 달리실 필요없이 사람들이 회개했었다면 하고 바라시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현실이란게 그런가보다. 결국 예수님이 죽기까지 했을만큼이나 되어야 우리는 늦게사 깨닫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고집불통이고 바뀌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결국 남을 죽이지 자신이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도 직업들은 더 잘될 거다. 자기는 결코 죽지 않을거다. -삭

